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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팸음식~ 스팸메일까지 과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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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팸음식

 

따뜻한 밥에 스팸한 조각, 명절이면 집안 한켠에 차곡차곡 채워지는 맛난 스팸. 여러분도 좋아하시나요? 아마도 싫어하는 분은 없을 것 같은데요. 저희집에서도 인기메뉴는 단연 스팸이랍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명절마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고급지게 포장된 선물세트로 팔리고 있지만

 

 

서양에서는 '싸구려 통조림 햄'으로 취급 받고 있답니다.

 

 

해외 언론들은 한국에서 인기 있다는 사실에 놀랍다는 기사를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우리나라의 밥도둑 스팸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빠질 수 없는 명절용에서 부터 스팸메일이라고 불려오는 오늘날까지 과거 어떤 역사를 갖고 있는지 궁금증을 풀어보는 시간 가져보아요.

 

스팸메일

<순서>

1. 호멜집안

2. 스팸의 탄생

3. 세계적으로 인기가 생긴 이유

4. 하와이안 무스비에서 스팸 무스비 탄생 일화

5. 스팸메일

6. 부대찌개

7. 종류

 

 

1. 호멜가

미국 시카고 도살장에서 일하던 조지 호멜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육류를 포장해서 파는 일이 블루오션이라는 것을 깨닫고 1891년, 미네소타 주에 있는 도시, 오스틴에 조지 호멜 컴퍼니를 설립하게 됩니다. 조지는 아주 깐깐한 사람이었는데, 특히 낭비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습니다.

 

 

 

어느날 커팅룸에 들어간 조지는 바닥에 떨어져있는 고기 덩어리를 발견하고는 직원들을 불러 모으더니 지폐를 꺼내 찢어버렸습니다. 직원들은 깜짝 놀라서 조지를 쳐다보고 있었고 조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지폐를 찢어서 미쳤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여러분들이 바닥에 고기를 내팽개치는 것과 같습니다."그렇게 조지 호멜은 신선한 돼지고기를 철저하게 관리하여 포장납품하면서 회사를 고급 육가공업체로 조금씩 성장시켜 갔습니다.

 

 

그러던 1892년, 조지 호멜 가정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의 이름이 제이 호멜, 제이 호멜은 어려서부터 사업가 정신과 혁신적인 사고가 남달랐습니다. 1914년, 그는 아버지의 회사에 입사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버지 조지 호멜은 제이에게 사업을 가르쳐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죠. 책상에 앉아서 서류를 보면서 배우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생산라인에 있는 사람들과 일하면서 직접 터득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제이는 2년 동안 작업복을 입고 회사의 각 부서에서 일하면서 직접 돼지를 정육하며 배워 갔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책임감은 점점 더 커져갔고 1916년, 교육 견습과정을 마친 제이는 회사의 부사장이 됩니다. 미국이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 1917년, 제이 호멜은 회사에서 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업상의 이유로 임대를 미룰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가 살고있던 미네소타 출신 중 가장 먼저 지원 입대하여 프랑스에 있던 미 육군 병참장교로 근무하게 됩니다. 전쟁이 끝나고 회사로 돌아온 그의 리더십은 더욱 견고해졌고 1927년 아버지 조지 호멜이 67세의 나이로 은퇴하게 되면서 제이 호멜은 회장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2. 스팸의 탄생

제이 호멜은 아버지 조지 호멜과 다른 리더십이었습니다. 조지 호멜이 제품의 품질과 공장 효율성에 집중하는 실용적인 리더인 반면 제이는 새로운 제품, 새로운 유통방법, 새로운 판매 기법, 새로운 마케팅 전락 등 새로움을 추구하는 아이디어 맨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조지 호멜 컴퍼니가 포장 판매하던 육류는 푸줏간에서 한번 더 조리를 해야 먹을 수 있는 형태였는데, 제이는 이 과정없이 소비자가 바로 구매하여 바로 먹을 수 있는 식품을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회사의 연구 개발팀과 함께 수년간 개발해 힘썼지만 만족스런 결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1926년 유럽여행을 하다가 친구의 소개로 독일 함부르크에서 작은 육가공 공장을 운영하는 폴 존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폴 존은 햄을 캔 속에 포장할 수 있는 방법을 이미 개발했던 것입니다. 제이는 존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함께 미국으로 돌아오게 되고 1927년 2월, 세계 최초로 공식 출시된 통조림 햄, HORMEL FLAVOR SEALED HAM을 출시하게 됩니다.

 

이후로도 제이는 바로 먹을 수 있는 편리한 제품 개발에 힘썼고 1932년에 통조림 스프인 DINTY MOORE STEW와 HORMEL CHILI 등을 출시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고민이 하나 있었습니다. 뼈를 분리하는 과정이 복잡한 돼지 어깨살, 지방이 많이 붙어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부위 등 맛은 있지만 팔리지 않는 처치 곤란 부위들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햄을 만들고 남은 골칫거리 부위들을 몽땅 넣고 갈아버린 후, 지방의 산화를 막고 향미를 높여주는 '아질산나트륨'을 첨가한 뒤 향신료를 넣은 호멜 향신료 햄을 개발하게 됩니다.

 

 

하지만, 매력없는 이름 때문인지 잘 팔리지 않자, 이 햄의 이름을 짓기 위해 100달러를 걸고 콘테스트를 열게 되는데, 호멜 컴퍼니 임원, 랄프 데이누의 형제였던 배우 '케니스 데이누'가 스파이스드 햄을 줄여서 SPAM이라는 이름을 제출하게 되는데, 이 이름이 채택되며, 1937년 7월 5일 스펨이 공시 출시됩니다. 

 

3. 세계적으로 인기가 생긴 이유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미국에서는 어마한 양의 보급품을 내게됬는데 호멜 컴퍼니에서만 1주일에 최대 1,500만톤의 고기를 동맹국으로 수출하였습니다.

 

 

영국은 국민들에게 배급제를 실시할만큼 물자 공급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스팸은 대용량 생산이 가능했기 때문에 무제한으로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고열량 단백질에 조리와 보관이 매우 쉬웠을 뿐 아니라 고기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보다 완벽한 전투식량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영국은 스팸랜드라고 불릴 정도로 소비했습니다.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게 되면서 미국 역시 식량으로 활용했는데, 군용 전투식량인 K-RATION으로 채택해 보급했습니다.

 

 

당시 미국 공군부대의 병사들은 그들의 캠프를 스팸빌이라고 명명하기도 했습니다. 1944년까지 호멜 컴퍼니의 통조림 식품 90%이상이 전투식량으로 출하되고, 1945년 초까지 모든 호멜 식품의 65%가 유럽과 태평양 전쟁에서 전투식량으로 소비되는데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생산된 양이 무려 1억 3천 3백만개 정도 였습니다. 

 

 

4. 하와이안 무스비에서 스팸 무스비 탄생 일화

 

쌀밥에 스팸을 김으로 묶은 하와이안 무스비 하와이 음식이지만 무스비라는 단어는 일본 주먹밥 오무스비에서 따왔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 태평양함대 사령부가 있었던 하와이에는 당연히 스팸이 넘쳤고 민간에도 흘러 들어갔습니다.

 

 

당시 하와이에 살던 일본인들은 생선 초밥을 만들어 팔았는데, 미국 정부에서 한때 하와이의 어업을 금지하게 되고 섬사람들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 중 하나였던 생선을 대신해 스팸을 넣어 팔면서 '스팸 무스비'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하와이안 무스비는 지금까지도 하와이에서 인기음식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5. 스팸메일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의 육군 총사령관이였던 아이젠 하워 대통령은 "저는 병사들과 스팸을 나눠먹었습니다."라며 호멜 컴퍼니 75주년을 맞이하여 감사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아이젠 하워는 호멜 컴퍼니의 잘못이 있다고 덧분였는데요. 그 잘못은 "지나치게 많이 보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간편하고 맛도 좋은 식량으로 평가됐지만 삼시세끼를 이것만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자 군인들은 질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던 1970년 영국BBC 코미디 풍자극 '몬티 파이튼 MONTY PYTHON'에서 스팸에 대한 주제를 다루게 됩니다. 식당의 종업원이 손님에게 메뉴를 알려줍니다.

 

 

계란스 팸, 계란 베이컨과 스 팸, 계란 베이컨 소시지와 스 팸, 스팸 베이컨 소시지와 스 팸, 스 팸 계란 스 팸 베이컨과 스  팸.......... 레스토랑에서 판매되는 모든 제품이 스 팸이 포함되어 있었고 옆에 있는 손님 무리는 스 팸 송을 부르는 장면이였습니다.

 

 

이 방송 후 과잉 공급을 의미하는 이미지를 갖게 되는데, 오늘날 상업적이고 불필요한 광고성 이메일을 일컫는 용어로 자리매김하게 된것입니다. 

6. 부대찌개

 

1950년에 발생한 6.25전쟁 남한에 미군들이 주둔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됩니다.  어느 나라든, 그 나라 현지 음식과 잘 어우러지는 융합능력을 가졌는데,

 

미군들을 따라다니며 기브미쪼꼴렛을 외치던 시절 전쟁 때문에 먹거리가 부족해지자, 미군과 관련된 일을 하던 사람들이 미군의 보급품을 몰래 빼내거나 먹다 남은 스팸, 소시지, 베이컨 등을 가져다가 한꺼번에 몽땅 넣고 볶아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고추장과, 김치, 육수를 부어 끓이기 시작했는데, 당시는 피죽 한 그릇 먹기 어려웠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요리의 양을 늘리기 위해서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미군부대에서 나온 재료들로 만든 이 음식을 부대찌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국에서 스팸은 고기를 상징되는 영양 식품으로 인식되며 고급식품으로 평가 받게 됩니다.

 

 

그러던 1986년 3월, 국내 한 기업이 미국 호멜사와 제휴를 맺고 1987년부터 스팸을 자체 생산하기 시작 하는데, 그 기업이 바로 제일제당입니다. '세계적인 명성, 세계적인 품질, 제일제당이 만듭니다'라고 광고하며 국내에 출시된 스팸.

 

 

게다가 제일제당은 명절용 선물세트로 기획하여 판매했는데 출시 첫 해 부터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은 500톤이 판매되며 대박상품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1997년 IMF이후부터는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맛있는 '고기'를 선물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명절선물'로 인기를 끌게 되었고 오늘날, 한국인의 밥도둑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7. 종류

미국에서 스 팸은 생각보다 많은 종류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스 팸 클래식(SPAM CLASSIC) 기존 스 팸보다 나트륨이 25% 적은 저염 스 팸, 거기에 칼로리와 지방을 더 줄인 스 팸 라이트, 스 팸후추, 스 팸 데리야끼, 스 팸 갈릭, 스 팸 베이컨, 스 팸 치즈 등 많습니다. 

 

 

이 외에도 정말 많아요. ㅎㅎ

지금까지 스팸음식~ 스팸메일까지 과거이야기 였습니다.

 

스 팸의 역사이야기 재밌었나요? 그동안 맛난 음식이라고만 생각하고 다른 생각은 못했는데 많은 공부가 되었답니다. 오늘 반찬은 스 팸어떤가요.ㅎㅎ

아~ 스 팸은 꼭 한번 데쳐서 기름을 빼고 드셔야 나쁜게 빠져서 건강하게 먹을 수 있답니다. 

오늘 하루도 맛있는 밥 먹고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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